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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눔/생각조각모음 7

한강

1. 나의 하루는 아주 단순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7시 반에 출근을 시작한다. 사람이 가득한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견뎌내면 어느새 회사에 출근해있다. 출근하고 나서는 어제 못한 일, 오늘 갑자기 주어진 일,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한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짧은 산책을 하고 나면 다시 또 업무의 반복이다. 운이 좋으면 6시에 퇴근하지만 대부분 6시가 지나서 상사 눈치를 살피며 7시가 되기 전에 겨우 퇴근한다. 6시 30분 이후에 퇴근하는 게 국룰이라는 이 회사를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 고민하며 왔던 그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태워져 있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 돌아오면 씻고 저녁을 먹는다. 겨우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릴라치면 어느새 시간은 열..

300원

1. 심부름을 하고 받은 300원으로 매일 행복했다. 300원이면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도 있고 과자도 사먹을 수도 있고 친구들과 놀러 갈 수도 있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돈은 아니었지만 300원만 있어도 매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에, 슈퍼에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그 시간들은 나에게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300원보다 훨씬 많은 돈이 주어지지만 과연 그만큼 행복한 지에 대해서는 섣부르게 대답할 수가 없다. 나는 그때보다 나이도 더 많아졌고 돈도 더 많아졌는데 행복은 더 줄어든 것 같다. 그때는 300원이면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처럼 즐거웠는데 지금은 300만원을 가져도 3000만원을 가져도 예전에 느꼈던 그 행복감을..

예쁘다.

1. 맑은 하늘이 예쁘다. 해 질 녘 붉은 노을이 예쁘다. 팔랑거리며 날갯짓을 하는 나비가 예쁘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이 예쁘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소리가 예쁘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여유롭게 식빵 굽는 고양이가 예쁘다. 계절마다 피워지는 꽃들이 예쁘다. 향기로운 꽃내음에 취해있는 강아지가 예쁘다. 엄마, 아빠의 손을 잡고 말갛게 웃는 아이가 예쁘다. 신나게 뛰어노는 강아지들의 몸짓이 예쁘다. 더운 날에도 손을 뗄 수 없다는 듯 꿋꿋하게 잡은 두 손이 예쁘다. 약속 장소에서 서서 나를 바라보는 너의 미소가 예쁘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입을 삐쭉 내밀고 뾰로통하게 있는 너의 모습이 예쁘다. 세상이 온통 나로 이루어져 있는 듯 나의 주변을 뱅뱅 돌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가 예쁘다...

반 페이지.

1.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뭐든지 늘기 위해서는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책을 탐독해보니 결론은 다 같았다. 꾸준히 글을 쓸 것, 잘 쓴 글을 필사해볼 것, 많은 사람들의 글을 읽어볼 것. 이렇게 추릴 수 있겠다. 이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본 결과, 꾸준히 글을 쓰는 것으로 정했다. 목표는 딱 반 페이지. 반 페이지를 채우기 위해 생각보다 고민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다. 어떤 주제로 글을 쓸까? 어떤 형식으로 글을 쓸까? 등등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가 내가 써야 하는 반 페이지를 주제로 내 마음을 써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매우 짧은 반 페이지가 나에게는 시작을 알리..

백신으로 알게 된 생리통의 위엄

코로나19 백신을 3차까지 모두 맞았다. 백신을 맞고 나서 아프기도 했는데 아프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픈걸 끔찍히도 싫어하는 나는 혹여나 백신맞고 많이 아플까봐 약도 구비해놓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거의 2~3일은 푹 쉬었다. 1차 백신을 처음 맞는 날,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백신을 맞는데 생각보다 약 넣을 때 아파서 '아 오늘 잘하면 더럽게 아프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 의외로 멀쩡하게 잘 지냈지만 "나는 국가가 인정한 환자야" 라는 말을 계속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기만 했다. 🤣🤣 주사를 맞고 6시간이 지나자 팔만 뻐근한게 아니라 열도 나고 식은땀도 나고 근육통이 온몸에 왔다. 으슬으슬 감기몸살에 걸린 것처럼 아프기 시작해 타이레놀을 먹고 누워있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더라..

예뻐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란 착각 - 미인박명

세상이 여자에게 주는 착각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 단연 1등은 예뻐야지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착각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여자라는 성별을 다는 순간 예쁨과는 떼레야 뗄 수 없게 된다. 태아의 성별이 딸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외모를 굉장히 걱정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할 수 없다. 남자나 여자나 같은 유전자를 받아서 오는 거라면 그리 큰 차이가 없을 텐데 태생부터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말을 안고 태어난다는 것이 증명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가 예뻐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사랑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다지 예쁘지 않은 내 얼굴로 살아오면서 느낀 건 내가 예쁘지 않아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예뻐서 좋은 점이 사랑받을 수 있다니? 안 예뻐도 받을 수 있던데? 여기에 한가..

언제 어디서나 웃통을 벗을 수 있는 자유

5-6살 무렵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다. 어김없이 선풍기 앞에 모여 더위를 식히고 있었는데 내 눈에는 아주 불만스러운 모습이 보였다. 오빠는 웃통을 벗고 선풍기를 쐬고 있는데 나는 옷을 꼭꼭 갖춰입고 선풍기를 쐬고 있는 것이었다. 언제나 옷가짐을 단정히 해야 한다고 아빠의 가르침에 왜 오빠는 예외가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불만이 가득담긴 표정으로 요리를 하고 있는 엄마에게 다가가 물어봤다. "엄마 왜 오빠는 위에 옷을 안입는데 나는 입고 있어?" 그러자 엄마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그럼 너도 벗으면 되지'라고 대답했다. 엄마의 명쾌한 대답이 만족스러웠던 나는 오빠랑 똑같이 웃통을 벗고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이런 나의 행동은 아빠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불호령과 함께 끝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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