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생각조각모음

한강

세리 2022. 5. 19.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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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의 하루는 아주 단순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7시 반에 출근을 시작한다. 사람이 가득한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견뎌내면 어느새 회사에 출근해있다. 출근하고 나서는 어제 못한 일, 오늘 갑자기 주어진 일,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일 등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한다. 중간에 점심을 먹고 짧은 산책을 하고 나면 다시 또 업무의 반복이다. 운이 좋으면 6시에 퇴근하지만 대부분 6시가 지나서 상사 눈치를 살피며 7시가 되기 전에 겨우 퇴근한다. 630분 이후에 퇴근하는 게 국룰이라는 이 회사를 언제쯤 그만둘 수 있을까 고민하며 왔던 그 길에 더 많은 사람들이 태워져 있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간다. 집에 돌아오면 씻고 저녁을 먹는다. 겨우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릴라치면 어느새 시간은 열 시를 훌쩍 넘기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지나가는 하루 속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행복한 시간이 숨겨져 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는 한강의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스쳐 가는 풍경 속 하나겠지만 나는 아니다. 한강을 좋아했던 건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아빠의 차를 타고 놀러 가던 날에 처음 본 한강은 보석을 던져놓은 듯, 반짝이 가루를 뿌려놓은 듯 햇살에 정처 없이 흔들리며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때의 기억은 마음에 박혀 지금까지도 한강만 보면 그때의 감정이 생각나 행복해지곤 한다.

가끔은 한강을 보면서 뚱딴지같은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저 속에 숨겨진 비밀이 있을 거라며 숨겨둔 상상력을 발휘해 마음껏 꿈꿔보기도 한다. 현실에서의 나는 그저 주어진 일 하나 처리하기 바쁜 세상에서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한 사람일 뿐이지만 상상 속에서의 나는 말도 안 되는 일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멋진 사람이다. 언젠가 상상 속 일이 현실이 되길 바라며 오늘도 그렇게 한강을 지나 퇴근을 한다.

 

2.

나의 하루는 아주 단순하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면 그대로 일어나 밖을 내다본다. 사람들은 나를 볼 수 없지만 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버스, 지하철, 자동차, 때때로 헬리콥터까지 다양한 것들이 밖을 지나간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구경하면서 오늘 하루도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힘내라고 마음의 응원을 건넨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배가 고프기 시작하면 방 밖으로 나가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물고기이다. 사실 매일 메뉴는 물고기이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하물며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물고기를 먹는다. 때로는 물고기가 나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에게 메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끔가다 먹는 별미로는 사람들이 한강에 버려두고 가는 음료수나 음식 찌꺼기들이 있다. 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한강에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많은지,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아는지 말이다. 가끔 낚시하러 오는 사람들이 던져두고 가는 바늘이나 낚싯줄 때문에 곤욕을 겪는지도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그 행동으로 인해 우리 집이 얼마나 망가져 가는지도 말이다. 나는 한강을 좋아한다.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물속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나는 이사를 가야 한다. 점점 더러워지는 한강 물에 내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될 거라는 걸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싫어하는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우리의 존재를 모르니까 싫어할 수도 없겠지만 이렇게 망가지는 한강을 볼 때면 우리의 존재를 알면서 모르는 척 내쫓으려고 그러는 건가 싶기도 하다. 일방적인 짝사랑이지만 그래도 바삐 움직이는 그 존재가 나는 즐겁고 좋다. 내가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사람들을 지켜볼 것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늘 나를 들뜨게 만드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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