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생각조각모음

백신으로 알게 된 생리통의 위엄

세리 2022. 1. 3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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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백신을 3차까지 모두 맞았다. 

백신을 맞고 나서 아프기도 했는데 아프면서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픈걸 끔찍히도 싫어하는 나는 혹여나 백신맞고 많이 아플까봐 약도 구비해놓고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거의 2~3일은 푹 쉬었다.

1차 백신을 처음 맞는 날,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백신을 맞는데 생각보다 약 넣을 때 아파서 '아 오늘 잘하면 더럽게 아프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 의외로 멀쩡하게 잘 지냈지만 "나는 국가가 인정한 환자야" 라는 말을 계속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기만 했다. 🤣🤣

주사를 맞고 6시간이 지나자 팔만 뻐근한게 아니라 열도 나고 식은땀도 나고 근육통이 온몸에 왔다.

으슬으슬 감기몸살에 걸린 것처럼 아프기 시작해 타이레놀을 먹고 누워있는데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더라.

친구들 사이에서 내가 백신을 조금 빨리 맞은 덕에 친구들이 괜찮냐고 물어보고 후기를 알려달라고 해서 증상이 어떠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생리통하고 증상은 똑같은데 배가 안아프니까 살거 같아. 멀쩡해."

그때 깨달았다.

아 내가 겪는 생리통이 정말 아픈거였구나, 생리통 증상 중에 날 가장 괴롭게 했던 건 뭘 해도 사라지지 않는 복통과 허리통증이었구나

아픈 증상이 없고 안아픈게 아니었다.

그저 이정도 아픔은 매달 겪는 거여서 나에게 별거 아닌 통증이고 아픔일 뿐이었다.

백신 후유증이란 이름으로 내가 쉬고 있는 것이지 나에게는 별다를 것 없는 시간이었다.

생리통일때는 아무도 몰라주던 아픔이 백신을 맞고 찾아오니 특별하고 조심해야 하고 쉬어야만 하는 통증이 된 것이다.

 

여자이기에 당연하게 겪는 아픔이어서 생리통에 대해서 한번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늘상 나도 내 친구들도 겪는 일이어서 그정도 아픈 걸로 쉬거나 일을 빼거나 일정을 미룬 적이 없었다.

진짜 꼼짝못하고 누워있을 정도는 되어야 주변에 양해를 구하고 쉬었다.

어느정도의 꼼짝 못함이어야 쉬었냐면 물 한모금 못마시고 이불 밖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고 일정을 미뤄야 함에도 손가락을 움직여 문자나 카톡을 할 수조차 없어 겨우 핸드폰 열고 연락처 찾아서 전화를 걸어 말 한마디 건네면 상대방이 "목소리가 왜 이렇게 안좋아? 어디 아파?"라는 말이 즉각적으로 튀어나오고 나의 증상을 말하기도 전에 쉬라는 답이 나오는 정도? 혹은 연락처 하나 찾아서 전화거는 것 조차 안되서 가족에게 연락처에서 누구 좀 찾아서 전화연결해달라고 해서 겨우 말하거나 아니면 대신 연락 좀 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의 꼼짝 못함일 경우들이어야 쉬었다.

심지어 생리통이라고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지 같은 놈들에게(생리통이 그정도로 아파? 안아프면서 쉬려고 생리통 핑계대고 엄살부리는거 아니야? 라는 빡대가리 같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생리통이 아닌 그저 복통이나 몸살 정도로 대신 말하면서 말이다.

(복통하니까 생각났는데 배가 아프다고 말하면 나에게 그러게 평소에 소식을 해야지 라는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 사람도 있었다 ㅎ)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생리휴가 한번을 못쓰고 평소에 백신맞고 아픈 정도로 일을 쉰 적이 없다는 사실에 현타(?)가 왔다.

매달 이렇게 아파서, 나에게는 늘상 있는 고통이어서 무뎠을 뿐 진짜 아팠던거였다.

생리휴가를 너무 쓰고 싶었음에도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 쉽사리 꺼내지 못했을뿐이다.

그러고 나서 생각해보니 생리통이 심장마비만큼 아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는 기사를 본 적 있었다.

여성의 고통은 의사들이 덜 심각하게 여기고 여성만 겪는 고통이기 때문에 무지하다고 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혹시 내 기억이 잘못된건가 싶어 기사를 찾아보니 정말이었다. 여기를 눌러 기사보기)

 

생리통이란 놈은 뭐랄까 나와는 뗄 수 없는 나의 분신같은 존재이지만 사람들에게 인정받지는 못하는 놈이다.

분명 나와 함께 실체하는데도 아는 사람만 알지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모르는 그런 놈이다. 

같은 증상임에도 감기몸살, 백신때문에 오는 증상 등으로 표현하면 알아듣지만 생리통이라고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이 반 이상이나 있는 그런 세상에서 내가 살고 있었다.

이렇게 지워진 것들이 얼마나 있을까?

이해받지 못하고 포기하고 체념한 채 살아가는 일들이 너무나도 잦아서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백신 한방에 다시 회자될 일임에도 설명해 뭐해, 이해시켜 뭐해 라는 이유로 감춰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이제는 더이상 포기하지 않고 체념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너무 많아서 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라는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화병 걸리는 사람이니까 말이라도 하면서 살아보련다.

그러다가 아무도 나랑 안놀아주면 하나님이랑 놀지 뭐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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