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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그 때 그 시절 시카고의 HOT한 매력 - 뮤지컬 시카고 후기

세리 2020. 6. 4.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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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주의

 

 

이번엔 가장 고전적이면서도 꽤 오랜 시간 사랑받은 뮤지컬 시카고에 대한 후기를 적어보려 한다.

2018년에 개막했던 가장 최신 버전의 시카고를 보고 왔다.

 

이전 포스팅에서 수없이 말했던 것처럼 배경지식없이 보는 걸 좋아하지만 이미 뮤지컬 계에서 정평이 나있는데다 뮤지컬을 모른다해도 영화로도 개봉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한 곡은 이미 멜로디를 흥얼거릴 정도이고 나오는 배우들의 의상이 파격적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유명하다는데 뮤지컬 덕후인 내가 보지 않는 건 말도 안된다는 생각에 조금 무리를 해서 보러갔었다.

이미 1년 뮤지컬 플랜이 짜여진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에서 확 끌리는 뮤지컬은 아니었지만 이걸 안보고 내가 뮤지컬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은 몇 개의 뮤지컬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가장 유명한 배우들의 캐스트로 예매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본 극에서 배우들은 최정원, 아이비, 남경주 배우였고 마마모튼 역의 배우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김경선 배우였다.

뮤지컬 아이다 후기에서 암네리스가 록시하트같다는 후기를 남긴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말한 그 록시하트가 바로 이 날 본 시카고의 록시하트다. 

 

처음 뮤지컬이 시작하면서 독특하다고 느낀 것은 지휘자가 무대에 나와있다는 점이었다.

무대 가운데에 ㄷ자를 오른쪽으로 회전해 뻥 뚤린 공간이 앞으로 오게 되어있었고 그 오른쪽? 왼쪽?에 서있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어쨌든 지휘자가 무대 위에 있다는 것이 재미있는 관람 포인트 중 하나였다.

중간 중간 무대를 진행하면서 지휘자도 마치 배우처럼 배우와 소통하는 장면들이 있어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

 

그 다음으로는 굉장히 중요부위만 가린 의상들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렇다고 해서 극을 선정적으로 끌고 가는 것은 아닌데 배우들이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다 헐벗고 나와서 맨 앞자리인 사람은 민망하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초반에 잠깐 든 생각이지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에 빠지면 의상이 별로 신경쓰이지 않게 된다.

극을 다 보고 나와서는 언론의 관심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교도소 안의 여자들이기 때문에 눈에 띄고 사람들이 원하는 그런 의상을 선택하게 된건 아닐까 라는 혼자만의 생각을 하기도 했다.

좀 더 풀어서 말하지면 그 시대의 여자는 너무나도 핍박이 심했고 교도소에 갔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을텐데 언론의 관심을 받고 동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세상이 요구하는 하지만 모두가 입을 수 없는 그런 의상을 선택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독특한 모양의 무대에서 시카고는 그 무대를 십분 활용해 독특하면서도 시카고만의 매력을 잘 느낄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꼭 한군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이 나오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배우들이 앉아 쉬는 듯 연기하기도 하고 무대활용도는 정말 만점이다.

 

배우들의 연기 그 자체도 시카고의 또 다른 매력포인트였다.

최정원 배우가 왜 시카고에 계속해서 캐스팅되는 지 이해가 됐다.

노련함과 카리스마가 엄청나다.

록시하트에게 관심을 빼앗겨 동업을 제안하는 과정 중에 나오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이 우스꽝스럽다기 보단 벨마켈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준다고 느꼈다.

누가봐도 우스꽝스럽고 굉장히 웃긴 장면인데 그것이 마냥 우습기만 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안 웃기거나 배우가 벨마켈리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연기가 어색하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배우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느끼게 되었다.

 

아이비와 남경주 배우, 그리고 마마모튼 역의 배우까지 모두가 물아일체가 되어 극 안에서의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잘 표현해주었다.

뮤지컬의 특성으로 인해 배우들이 간혹 "연기하는 중"이라는 게 표가 날 때가 있는데 충분히 그런 티가 나도고 남을 만한 극에서 그런 느낌이 하나도 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게 참 신기했다.

과장된 표현들이 난무하는데 그게 극하고 잘어울리고 배역하고도 찰떡이고 잘 어우러져서 자연스럽다는 건 정말 배우들이 연습도 연구도 많이 했다는 뜻이기에 배우들의 역량이 엄청나다는 걸 느끼며 최정원 배우를 비롯한 몇 배우들이 왜 계속해서 같은 사람들이 캐스팅되는 지 이해가 됐다.

오디션을 봐도 그만큼 자연스럽게 배역을 소화해내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시카고 하면 떠오르는 올 댓 재즈와 셀 블럭 탱고의 장면은 아예 머리에 각인되었다.

몸을 쭉쭉 펴는 동작이 아니라 오그라드는 느낌으로 관절을 하나하나 사용하는 안무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배우의 연기까지 올 댓 재즈는 시카고를 대표할 수 밖에 없는 넘버이다.

흥을 돋우고 극의 시작을 알리는 느낌인 올 댓 재즈는 듣는 순간 시카고라는 극을 보러 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아마 노래를 알고 있기에 더 그런게 아닐까 싶다.

올 댓 재즈와 더불어 앙상블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셀 블럭 탱고는 "팝, 식스, 스퀴시, 어-어, 시세로, 립시츠" 로 이루어진 추임새만 들어도 모두가 알법한 굉장히 유명한 넘버이다.

각 교도소 수감자들이 나와서 왜 자신이 감옥에 오게 되었는 지 노래하는데 사실 모든 잘못은 내가 아니라 남자에게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풀어내면서도 시카고의 주제를 그대로 담는 넘버라고 느꼈다.

일단 곡 자체가 매력적인데 이걸 연기하는 앙상블들도 엄청나다.

동작도 노래도 연기도 엄청나다!

 

시카고에서는 볼거리와 재미를 제공하면서도 그 시대에 사람들 사이에 만연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풍자를 통해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뮤지컬은 오래 사랑받는 극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여성이 전면에 나오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살기가 어렵다는 것, 범죄를 저질렀지만 무죄인 사람도 권력과 힘에 의해 유죄가 된다는 사실, 범죄자임에도 예쁘고 매력적인 자에게 서사를 부여해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받아 돈을 버는 것, 그런데 그 돈을 버는 것 조차 여성 본인에게 도움이 된다기보단 그런 서사를 부여해 돈을 가져가는 남성이 있다는 것 등 정말 많은 장면들이 그 시대의 상황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 상황이 그 시대에만 국한된 것일까?

시대가 변했고 많은 상황이 달라졌음에도 그 맥락에서 이어져 나오는 차별과 편견들은 여전하기 때문에 시카고라는 극이 계속 이어지는 게 아닐까?

여전히 성별과 인종과 다양한 잣대로 차별받는 사람이 존재하기에 이 극이 유지될 수 있고 또 그저 하나의 극에 끝나지 않고 많은 생각을 하게 던져주는 게 아닐까?

여전히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가 나뉘고 그 시대라고 단정지으며 멀리 떨어져 제 3자로 바라보기엔 현 시대에도 그 모습들이 곳곳에 박혀있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어쩌면 차별하는 자는 이 재미있는 뮤지컬을 정말 재미있게 즐기고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을 수도 있겠다.

그 시대에 있던 일이라고 치부하고 차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하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마디로 시카고는 워낙에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대의 상황을 잘 반영한 극이다보니 뮤지컬을 감상하는데에서 그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참 정리하는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는 뮤지컬이다.

자신이 원한다면 아무 생각없이 즐기고 올 수 있지만 또 반대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왜 유명한지, 왜 사람들이 즐겁다고 재밌다고 말하는 지 경험해보기를 추천한다.

더불어 이 극이 그저 재밌게만 느껴진다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자신이 어떤 대상을 차별하고 있는 것은 없는 지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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