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기독교인으로 살아남기

[QT] 과감하게 헌금하고 십일조를 내는 그날까지

세리 2022. 3. 14.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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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 : 1~9

 

하나님이 우리에게 한결같이 말씀하시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쉽게 보이는 것에 미혹되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우리가 보지 못하는 중심을 보신다.

헌금이나 십일조에 대해서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원한다는 것을 성경을 조금만 읽어봐도 알 수 있다.

많은 교회들이 헌금과 십일조, 일천번제 등 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사람들은 알고 있지만 생각보다 헌금이나 십일조 등을 하지 않아도 교회생활을 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돈을 요구하는 곳이라면 그냥 나오면 그만이다.

그곳이 아니더라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는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돈을 요구하는 가에 대한 그 본질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우선이다.

마음에 있지도 않은, 남들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하는 헌금과 십일조를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내 생각이지만 그렇게 어거지로 낼 바에야 안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가장 많은 헌금을 내었다고 말씀하셨다.

부자는 더 많은 돈을 냈을지언정 가난한 자의 마음을 이기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액수만 놓고 봤을 때는 부자가 훨씬 많은 돈을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난한 자는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금액을 냈고 예수님은 그걸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전부를 내는 믿음은 쉽지 않다.

아니, 일정금액의 아주 작은 돈이라도 내는 것은 쉽지 않다.

나부터도 주일 헌금 내는 것, 십일조 내는 것 중 어느 하나 쉽지 않다.

이 돈을 내면 내가 쓸 수 있는 돈의 얼마큼이 사라지는데, 이 돈이 있으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데, 적금이라도 하나 더 들 수 있는데 등등 이 돈을 활용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방법들이 머리를 떠돈다.

그럼에도 십일조를 내고 헌금을 내는 것은 내가 하나님과 약속했기 때문이다.

교회와 약속한 것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내가 십일조 내는 사람이라고 보여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교회 안에서 나의 입지를 다지고 집사로, 권사로 올라가기 위한 것도 아니다.

내가 하나님께 내가 번 돈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온 것임을 십일조로 고백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 고백이 흔들리고 내 안의 수많은 유혹에 결국 져서 안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다시 다짐하고 다시 고백하고 다시 헌금을 한다.

내가 아주 부족한 사람이란 걸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에 넘어지는 걸로 뭐라고 하지 않으신다.

특히 나에게 가장 약한 부분이 물질적인 것이란 걸 하나님은 아시기에 한두 번 넘어지는 것에 대해서 크게 괘념치 않으신다.

그래도 하나님이 내게 보이신 은혜와 역사가 있기 때문에 한번 더 하나님께 다짐하고 고백하며 십일조를, 헌금을 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일을 꼭 해내고 보여주신다.

그런 하나님을 믿기에 당장 눈앞에 아무것도 없어도 내 마음가짐을 바꾸고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나아간다.

이런 내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너무나도 잘 알지만 그래도 괜찮다.

타인의 시선보다 하나님과 함께 한 시간과 이야기들이 내게는 더 소중하기 때문에 괜찮다.

하나님이 나에게 약속하신 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발견해나가는 삶이 즐겁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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