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 : 1~12
예전에 침묵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과제 때문에 읽은 책이었는데 그 책은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일본에서 있었던 기독교 박해와 배교에 대한 내용이 담긴 책이다.
오늘 성경을 읽는데 그 책이 생각났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당할 것이라는 말에서 배교했던 그 책의 내용들이 생각난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 쉬울까?
저 시대에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모험이자 도전이었을 것이다.
시대에 따라 어려움들은 다 다르지만 예수님이라는 메시아가 눈앞에 나타났음에도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있으며 알아본 자들은 예수를 믿으라 말하지만 막상 말하는 것 자체가 큰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그거 알기에 예수님은 두려워할 분은 오로지 하나님 뿐이라고 말한다.
당장 죽게 생겼는데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게 가당키나 할까
만약 내가 배교하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데 그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있을까
상상만으로도 너무 괴로워서 아무런 답도 내리지 못한 채 생각을 멈추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믿음이 더 커질수록 아는게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분명 하나님만 믿으면 된다는 걸 알고 있고 하나님만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성경을 통해 보게 되는 여러 상황들을 속에서 '나라면'이 붙으면 두려운 게 많아진다.
담대함을 구하는 기도를 할 수밖에 없고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강해지려, 담대해지려 해도 작아지는 건 인간의 나약함이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더 크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핍박받는 곳이 아니다.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나에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볼모로 배교하라고 강요하는 곳은 아니다.
그런데도 호불호가 갈린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떳떳하게 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너무 잘 알아서 말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처음 이 묵상을 공개적인 곳에 올릴 때 내가 할 수 있는 믿음의 실천이 바로 이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용기 내서 공개적인 곳에 묵상을 올린다고 했는데 점점 솔직해지는 내 묵상 속에서 가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다.
바로 어제 묵상에서도 나의 진솔한 이야기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 하나님과 독대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어떻게 보일지 빤히 알면서도 이렇게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참 어렵다.
나에게 더 담대함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모두에게 외칠 수 있는 그런 담대함이 아직은 더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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