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눔/기독교인으로 살아남기

[QT] 내가 너보다 작으면 어쩌고 크면 어쩌게

세리 2022. 2. 3.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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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9 : 37~50

 

오늘의 말씀에서 제자들은 혼나기만 한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복창 터질만한 상황이긴 하다.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몸소 보이고 가르치고 알려주고 이제 스스로 할 수 있게 다 도와줬는데 기껏 한다는 말이 누가 더 크냐는 이야기나 하고 귀신은 내쫓지도 못하고 얼마나 답답할까

반대로 제자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예수님이 하는 말이 하나같이 심오하고 생각해야 하는 말들인데 그거를 한 번에 찰떡같이 알아듣는 게 얼마나 힘들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제자들이 잘못한 게 맞다.

귀신 쫓는거야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이 부족한 것이 원인이긴 하지만 아무리 배웠어도 실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근데 누가 더 크냐고 투닥거리는 건 좀 아니라고 본다.

예수님을 앞에 두고 제자들을 줄 세워서 남는게 뭐라고 자기들끼리 저러고 있을까 싶기 때문이다.

 

누가 크냐는 말에 왈가왈부할 정신이 있으면서 귀신쫓을 정신은 없었나?

정말 자신이 크다고 생각한다면 아까 귀신은 왜 못쫓아냈는데싶다.

예수님은 한 번도 자신이 크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자신이 행하는 능력을 제자들에게도 나눠주고 함께 하자하는데 그 밑에 애들은 서로 편 가르고 급 나누고 있으니 얼마나 어이가 없을까

제자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우리에게 알려주는 주님의 믿음이나 말씀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서로의 믿음이 크다고 난리 치는 모습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렇다, 저렇다 수없이 하시는 말씀에는 제대로 아멘도 못하면서 내가 더 오래 교회를 다녔으니까 쟤보다는 믿음이 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말이다.

 

본문을 읽으면서 예전에 경험했던 일이 생각났다.

하나님께 은사를 받고 받은 게 맞나 긴가민가하기도 하고 은사를 받았다는 사실에 신나기도 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라고 해서 동네방네 떠든 것은 아니고 나와 친한 사람, 나와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었다.

같이 기도하고 함께 사역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은사를 받은 기쁨과 혼란스러움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뒤늦게 일부 사람들이 했던 말들을 전해 듣게 되었는데 아주 가관이었다.

내가 그런 은사를 받았을 리가 없다고 은사 받았다고 설치고 다니는 꼴을 보니 그저 자랑하고 싶었던 것뿐이라고 하는 험담이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지금도 생생하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도 들고 내 말이 이렇게까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게 억울하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황당하기도 했다.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라고 늘 생각하면서 살았던 나에게 진심이 통하는 것도 사람에 따라 다르다는 걸 느끼게 해 준 사건이었다.

그 일을 타산지석 삼아 더 하나님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을 향한 의문의 답을 사람에게 구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을 통해 해결하려고 더 많이 기도하고 성경을 읽었다.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오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그 뒤로 받은 은사나 은혜와 관련된 이야기도 조심하며 나누게 되었다.

사람들끼리 비교하며 믿음의 크기를 나누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님이 말했듯이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비교해서 내가 제일 큰 자가 되고 싶지 않다. 그저 하나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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