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8 : 40~56
예전에 신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게 뭐가 그렇게 어려워서 다들 난리일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른 걸 바라지도 않고 그저 믿기만 하면 다 해주시는데 왜 믿지를 못하는 걸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참 단순했고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다.
믿음을 선택함에 따른 이면을 하나도 몰랐다.
그저 믿으라기에 믿었고 그런 단순함이 나와 하나님을 가깝게도 했지만 신앙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게 많아져서 예전과 같이 섣불리 믿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
예전엔 "하나님 나는 믿어요!" 라는 한마디를 주님께서 바라셨다면 지금은 더 깊고 더 진한 믿음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걸 안다.
그래서 예전엔 믿는 게 참 쉬웠는데 이제는 믿는 게 참 어렵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갖던 믿음이 예전에 내가 가졌던 그 믿음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의 여인은 예수님 믿는다고 고백하면 된다니까 고백한 나처럼 저 옷자락만 잡으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작은 믿음까지도 기쁘게 받으셨다.
어릴 적 멋모르고 했던 그 믿음의 고백까지도 예수님은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과 그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하는 말씀을 보니 내가 이렇게 구원받았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아는 것이 너무 많아져서 단순한 믿음을 보이기가 참 어렵다.
마치 죽은 자를 보고 죽지 않았다 하는 예수님께 비웃음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상식이고, 당연한 사실에 대해 반하는 말씀을 하는 예수님을 보고 쉽게 믿지 않고 오히려 비웃음을 보이는 사람들처럼 믿음을 드리는 것이 쉽지 않다.
내 가치관과 하나님의 말씀이 충돌할 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끝끝내 선택하지만 그 과정이 정말 쉽지 않고 여전히 어렵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의문들을 다 덮고 그저 믿음으로 아멘 하는 것이 쉽지 않고 해결되지 않은 의문을 해결해 나가면서 하나님께 묻고 답을 얻는 그 과정이 참 어렵다.
야이로의 딸을 살리면서 몇몇 자들만 그 안으로 들이셨을 때 그 기준이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만 데려간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믿는 자에게만 기꺼이 기적을 보이시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믿지 않는 자는 기적을 볼 자격도 없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내안에 너무나도 많은 가타부타한 말들을 모두 떨쳐내고 그저 단어 뜻 그 자체처럼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던 그 마음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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