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 : 18~36
예수님을 보면서 사람들은 다 다양한 이야기를 한다.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누구는 세례 요한, 누구는 엘리야, 누구는 예언자 중 한 명 등등 예수님은 하나인데 보는 모습에 따라서 사람들이 말하는 바는 다르다.
참 신기하다.
예수님이 말한 것도 같이 들었고 행한 것도 같이 봤는데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지식에 따라서 예수님을 정의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이 맞다고 한다.
과연 그들 중에서 예수님을 제대로 본 자가 몇이나 될까?
예수님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한데 한낱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 다른 말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나도 똑같이 행동하는데 사람들에 따라서 누구는 착하다 말하고 누구는 못됐다 말한다.
예수님은 대단한 사람이라 그럴 수 있다지만 나는 별 것도 아닌데 나에 대한 정의 하나 통일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본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 알게 되는 듯하다.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따른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었다.
일단 십자가라는 것은 고난과 희생, 역경의 상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 것은 어떤 길인지 빤히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하고 고난과 역경과 험난한 상황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모를 때는 하나님이 지라니까 십자가를 지자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가 그걸 알게 되고 나서는 하나님한테 딜 아닌 딜을 하게 되었다.
'아니 하나님, 예수님이야 하나님 아들이고 능력이 있는 분이시니까 그걸 견뎠지만 별 볼 일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그 험난한 길을 견뎌낼 수 있겠어요?'부터 시작해서 내가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께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 내가 이걸 왜 못하는지 구구절절 하소연을 했었다.
구구절절 하나님께 꺼내는 나의 말의 요지는 '나는 아픈 게 싫고 힘든 게 무서워서 십자가 못 지겠으니까 십자가 지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해보는 걸로 합의를 좀 해봅시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하나님 안에서 이런저런 경험들을 한 것에 더해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 앞에 내가 십자가를 지기로 아주 큰 결심을 했다.
나에게는 정말 엄청난 결심이었는데 그런 결심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리자 하나님이 나를 향해 흐뭇하게 웃으시며 내가 십자가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분명 내가 십자가를 지겠다고 했는데 십자가를 지기는커녕 십자가가 마치 양탄자 인양 그 위에 올라타서 하나님을 향해 다이렉트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힘들고 어렵고 고난의 길을 억지로 가라고 떠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길에 대한 어려움을 알면서도 선택하길 바랬고 내가 그런 선택을 하자 '나는 너의 그런 결심이면 족하다. 힘들고 어려운 건 내가 대신 하마.'라는 말과 함께 십자가에 나를 태우고 하나님께로 데려간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뒤로 십자가를 볼 때마다 우릴 향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쉽지 않다.
보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을 마주해야 하고 사람들이 어리석다 말하는 길을 선택할 수 있는 배짱도 있어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외의 다른 것으로 인해 흔들리지 않도록 매일 매 순간 마음을 다잡아야 하고 등등 정말 많은 것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십자가를 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거나 들을 때면 하나님이 날 참 사랑하시지 라는 생각이 자동적으로 들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알게 되니까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졌던 수많은 선택들과 나의 마음을 다잡는 일이 조금은 수월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연약하고 넘어지고 떨어지고 아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당당히 말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가관도 이런 가관이 따로 없다.
그런데도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이유는 내가 못해도 하나님이 하시기에, 내가 하겠다 결심한 것만으로도 하나님은 기뻐하시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나에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기에 부족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나를 향해 "저런 애가 하나님을 믿는다고?"라는 말을 던질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건 지금 당장 내 모습이 훌륭하고 예수님과 비교했을 때 어디 하나 흠잡을 곳 없이 동일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나는 부족한 사람일 것이다.
많이 넘어지고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고 아주 어린 갓난쟁이나 할법한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딱 하나 내가 바라는 건 적어도 하나님과 떨어지지 않고 지금만큼의 거리라도 유지하면서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날 둘러싼 환경과 상황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끝가지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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