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0 : 25~42
잘하고 못하고의 능력치보다 마음이 어떠한가를 먼저 보는 것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을 보면서 또 한 번 느꼈다.
율법 교사가 자신이 옳게 보이려고 하는 그 말들에 예수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나라면 가증스러워서 한 소리했을지도 모른다.
예수님은 그에게 책망의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저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다.
율법 교사를 가르치는 예수님의 비유를 들면서 왜 사마리아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는지 이해가 된다.
예수님에게 그 사람의 출신, 배경, 능력 등은 그 사람을 차별할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의 자녀이고 동일한 사람일 뿐이기에 그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먼저 본다.
제사장임에도 레위인임에도 행하지 않던 선한 일을 사마리아인이 했을 때 예수님은 그저 사마리아인이 한 선한 일에 대해서만 집중하신다.
우리의 죄를 사하신다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도 이런 의미가 아닐까
내가 누구이고 하나님과 얼마나 오래알았고 교회를 얼마나 다녔고는 하나님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않는다.
그저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나의 마음을 꺼내보이고 내 안에 하나님을 좇고자 함을 먼저 보시기에 내가 한 죄보다 그 죄를 고하며 용서받길 원하는 그 후회와 분한함을 먼저 보시는 게 아닐까
가끔 미디어에서 비추는 죄인에서 목사가 된 자들을 볼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분명 죄를 저지른 건 자신인데도 자기는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죄가 없다 말하며 목사라는 신분을 내세워 주인공들을 괴롭히는 걸 볼 때면 하나님이 말한 회개와 용서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회개와 용서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자들 눈에는 이게 저렇게 모순되어 보이는구나를 느낀다.
하나님이 말한 회개와 용서가 진심이라면 결코 미디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뻔뻔할 수 없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 자각을 한 자라면 그래서 진실로 회개하고 하나님께 참으로 용서받았다면 결코 저런 말을 할 수 없다.
매 순간 또 같은 죄를 저지를까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그런 행동을 한 내 자신이 후회스럽고 한심한 마음에 나를 돌아보느라 정신없지 나는 용서받았으니 모든 죄는 너에게 있다며 남 탓을 할 수 없다.
정죄함만이 가득차고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했을 뿐이다.
속상하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은 그런 걸 위한 게 아닌데도 왜곡되어버린 모습들이 참 속상하다.
나라고 늘 옳은 일, 바른 말을 행하는 건 아니지만 누구보다 못되고 악한 마음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 아니라고 생각되는 모습을 내가 하지는 말아야겠다.
한순간에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순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습들에서 하나둘씩 벗어나 하나님이 보기에 믿는 대로 행하는 자라고 불리고 싶다.
마리아처럼 무엇이 더 중요한지 분별할 수 있고 그 중요한 것을 먼저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분별의 기준이 하나님이 되고 단순히 투자를 위해, 나의 앞날을 위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이해하고 믿기 위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하나님을 기준으로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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